ESSAY (잡록)

아리랑, 그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Salierstar돛단별 2016. 9. 7. 22:35

3대 전통 아리랑

우리나라에 편재한 아리랑은 곡조로 구분하더라도 약 60여 종이 넘는다.  그 중 우리 나라 3대 전통 아리랑으로는

l   강원 정선의 아라리

l   전남 진도의 아리랑 타령’, 그리고

l   경남의 밀양 아리랑

이 꼽힌다.

이들 중에서 진도와 밀양 아리랑은 창작 연대를 100여 년 전으로 보고 있는 반면, 정선 아리랑은 14세기 말부터 약 600여 년의 풍상을 견뎌온 아리랑의 시조(始祖)로 여겨지고 있다.

아리랑, 그 가치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인 모든 노래는 지역과 태생을 막론하고 아리랑이라 정의하고, 이에 따라 아리랑이 지난 2012 12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어서 지난 2015 9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9로도 지정되었다.

이는 아리랑이 이러한 후렴구 위에 무한한 노랫말로 살아 퍼져 나갈 수 있는 생물이며 마땅히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인류의 무형 유산임을 전 세계가 인정하였고 우리 겨레가 영원토록 지켜야 할 무한한 가치의 보물임을 국내외에 선포한 것이었다.

아리랑, 그 뜻은?

아리랑, 우리는 물론이고 세계인 누구나 발음하기도 쉬운 말이다. 그러나, “이 아리랑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은 주장을 내 놓았기에 어느 하나를 꼭 집어 이것이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여러 설 중에서 몇을 꼽자면,

1.    옛날 밀양부사 외동딸 아낭(阿娘)’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찬미한다는 설

2.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비, ‘알영(閼英)’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또는 이 알영이 태어난 알영 우물로 올라가는 알령 고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3.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시 원납금과 노동 징발에 대한 원망을 함의한 아이롱(我耳聾)’, ‘아난리(我難離)’ 또는 아리낭(我離娘)’에서 아리랑이 비롯되었다는 설

4.    아리랑 고개가 낙랑에서 남으로 넘어오는 자비령(慈悲嶺)’을 의미한다는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설

5.    아리랑이 곱고 그리운 님의 뜻이라고 동아일보(2003.01.16)에 주장한 신용하 교수의 설

6.    동아일보(1959.05.03~04) ‘아리랑의 고찰(考察)에서 아리랑은 민족의 밝은 미래를 함의하는 광명한 고개의 뜻이라고 주장한 양주동(1903~1977) 박사의 설

등등이 있다.

아리랑, 그 신기한 능력

양주동 박사의 아리랑 고찰에 의하면,

옛말밝다는 뜻으로서 (아리)’, ‘(어리)’, ‘(오리)’, ‘(우리)’()’, ‘부리등으로 전음(轉音)되었고 부리는 다시 ()’, ‘부리/우리(, )’ 등으로 발전되었으며, 우리가 무의식 중에 자주 사용하는 우리(We)’ 이 그 어원이기에 광명의 족속이라는 족칭(族稱)이다.”

라고 하면서 아리나 그 어근 이 다른 단어와 결합하거나 연음 될 때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론적 배경을 구축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다만, 양 박사가 아리랑고개라는 뜻의 ()’의 음전으로만 한정하는 족쇄를 채웠었는데 그마저도 풀어주고 살펴보면 아리랑은 마술이나 둔갑술을 부리는 듯 여러 가지 새로운 뜻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면, 우리나라 3대 전통 아리랑을 중심으로 그 후렴구에서 재주를 부리고 있는 아리랑의 신기한 공연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아라리, 정선 아리랑

정선 아리랑’, 하지만 정선 사람들은 반드시 아라리라 부르며, 모든 아리랑의 시조(始祖)1971강원도 무형문화재 1로 등재되었다. 다른 진도나 밀양 아리랑에 비하여 다소 느리고 단조롭게 불리는 노랫말은 약 800여 수에 이르는데 그 첫수 노랫말,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에는

“14세기 말 여말조초(麗末朝初),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의 거칠현이 정선 남면 서운산으로 피신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며 여생을 산나물을 뜯어 먹고 살았으며, 이들은 고려에 대한 흠모와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과 고달픈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한시(漢詩)를 지었는데 이를 세간이 풀이하여 부른 것이다.”

라는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노랫말 중의 만수산현재 개성 역사 유적 지구[i] 내의 산으로 본다면, 이는 고려 왕조를 뜻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이는

무슨 변괴는 없을까 너무나 걱정이 되는데,
고려에 불길한 조짐이 마구 몰려드는구나

라는 뜻으로 고려 왕조에 대한 거칠현의 걱정과 충정이 절절하게 노랫말에 드러나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 경우 후렴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는 어떠한 뜻일까?

첫 번째 줄의 아리랑, 아리랑아리랑에서는 양 박사의 주장과 같이 아리우리의 옛말이며 ()’의 전음(轉音)이기에 우리의 령()’이란 뜻이 되고, 이어지는 아라리요+나이+의 연음(連音)으로 보면 또한 우리의 옛말이고 나이()’의 옛 발음이기에 우리의 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줄의 아리랑에서는 고개, 고개로와 의미가 중복되기 때문에 아리령()’의 전음(轉音) 보다는 아리의 원래 뜻인 밝음으로 보고, ‘은 지금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너랑 나랑의 경우처럼 ‘~() 함께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하면,

우리의 고개, 우리의 고개, 우리의 내여.
밝음과 함께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라는 뜻으로 후렴구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기서, 첫 번째 줄의 고개에서는 , ‘에서는 이 연상되며, 두 번째 줄의 고개, 고개넘겨주게라는 바람(소망)과 함께 어떤 변화의 국면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첫수의 후렴구는

우리 강산(江山)이여
밝음이 함께하는 국면으로 나를 보내 주오

라는 뜻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아라리의 첫수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무슨 변괴는 없을까 너무나 걱정이 되는데,
고려에 불길한 조짐이 마구 몰려드는구나

우리 강산(江山)이여
밝음이 함께하는 국면으로 나를 보내 주오

이번엔 좀 가벼운 노랫말로,

정선읍네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와 같이 밤일도 시원찮은 서방이지만 함께 사는 삶을 당연시하면서도, 한편으로 쌓인 한은 이런 해학으로 메기고 받으며 풀어내던 아낙네들의 한 바탕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아라리의 후렴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도 살펴보자.

첫 번째 줄 아리랑, 아리랑아리랑아리+()’으로 보면 우리 남편이란 뜻이 되고, 이어지는 아라리요++이요의 연음(연음)으로 보면 우리 얼이요라는 뜻이 되는데, 여기서 은 옛날에 천연두를 앓아 곰보가 되면 얼굴이 얽었다라고 했던 것처럼 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이나 해()’의 뜻을 가진 순 우리말 언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줄의 아리랑은 그냥 우리 함께라는 뜻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를 정리하면,

우리 남편, 우리 남편, 우리 언걸이요
우리 함께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라는 뜻으로 후렴구가 또 다르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언걸이요를 요즘 말로 바꾸면 도대체 도움이 안되네쯤 될 것 같고, 두 번째 줄의 고개, 고개로어려움이랄지 힘든 인생사쯤으로 보아

우리 서방, 우리 서방, 도대체 도움이 안되네 (하지만)
우리 함께 어려운 인생사 헤쳐나갑시다

라는 뜻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정선읍네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우리 서방, 우리 서방, 도대체 도움이 안되지만
우리 함께 어려운 인생사 헤쳐나갑시다

라고 이 아라리는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원도 무형문화재지정을 기념하는 아라리 비문에는,

본래는「아라리」라고 일컫던 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어느새 보편적인 「아리랑」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으니 아리랑이란 누가 나의 처지와 심정을 「알리」에서 연유된 듯하더라.”

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비문의 작자도 아리랑의 둔갑술을 이미 엿보지 않았나 싶다.

아리랑 타령, 진도 아리랑

정선 사람이 정선 아리랑아라리라고 하듯이 진도 사람은 진도 아리랑아리랑 타령이라고 한다. 아라리가 좀 무거운 시작이었던 반면, 아리랑 타령은 진도 섬 총각과 육지 처녀간의 비극적 사랑과 이별’, 또는 진도 섬 총각, 섬 처녀와 육지 처녀간의 막장 드라마적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진도 신청(神廳)’[ii]에서 누군가가 시작했다고도 한다.

노랫말에 유성기, 자전거 등의 개화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 유교적 전통과 개화문명이 뒤섞여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고 있던 20세기 초 전후, 10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위가 높은 욕설, 한탄, 익살 등을 통하여 아낙네들의 야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여럿이 부를 때는 한 사람이 메기면 나머지가 받는 돌림 노래식 집단 노동요의 전형으로서 힘든 서로의 삶을 함께 공감하며 살아가던 옛 아낙들의 웃음과 눈물이 뒤범벅된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아리랑 타령은 비교적 흥겹지만 우수가 서린 가락으로 불려지는데, 먼저 섬 총각과 육지 처녀 간의 신분을 넘어선 지고지순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그 첫수를 한 번 보자.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님은 가고 싶어 가느냐

서산에 지는 해날 두고 가신 님’, 그리고 지고가고에서와 같이 음운적 라임(Rhyme)뿐만 아니라 영상적 대비까지 완벽한 이 노랫말을 보면 그저 경탄이 그칠 수가 없다. 요즘 힙합(Hip Hop)이 젊은이들의 대세인 까닭이 토해내듯 지껄이듯 부르지만 노랫말의 라임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 때문이라면 이미 100여 년 전 우리 옛 아낙들은 이미 힙합의 신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술처럼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 이런 노랫말에 이어지는 후렴구,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는 어찌 봐야 되겠는가?

후렴구 첫 줄, ‘아리, 아리랑우리, 우리 함께라고 봐도 무리가 없겠고, 이어지는 스리, 스리랑에서는 우리가 즐기는 을 옛날엔 수울이라 하였기에 , 술과 함께라는 뜻의 수울, 수울이랑이 자연스럽게 수리, 수리랑이라고 들리게 되고 이것이 구전되면서 스리, 스리랑혹은 서리, 서리랑등으로 전음(轉音)된 것으로 추측된다.

각 줄 마지막의 아라리가 났네에서 아라리+알이의 연음으로, 첫째 우리의 뜻을 가진 아리의 원형 이고 두째 밝다()’의 뜻을 가진 에서 유래된 로 보아 우리 불이 났네의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째 줄의 아리랑은 역시 우리 함께로 보고, 이어지는 응응응은 그저 추임새라기 보다는 신난다()’으로 보는 것이 단군 이래로 천신(하느님)’을 모시면서 절기 때때 함께 모여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하며 흥에 겨워하던 우리 성정에 들어 맞는 것 같아,

우리, 우리 함께, 술에 술과 함께, 우리 불이 났네
우리 함께, 흥흥흥(), 우리 불이 났네

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다시 우리 불이 났네는 우리 유전자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온 열정이 솟구치는 모습, 신난다와 연상되어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님은 가고 싶어 가느냐

우리, 함께 모두, 술에 술과 함께하니 우리 신이 났네
우리 함께, 흥흥흥, 우리 신이 났네

와 같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우수가 서렸지만 흥에 겨운 가락, 여기에 죽은 정인과의 애절한 이별의 노랫말에 술과 흥이 함께 하여 신나는 후렴구. 이것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오히려 축제 같은 분위기로 망자를 보내는 전라도 섬 지방의 역설적이고도 특이한 장례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더불어 노랫말 몇 개를 더 살펴 보자.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가 났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먼저 문경새재로 시작하는 노랫말에서는 힘든 삶의 애환이 느껴지며, ‘서방님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에서는 숨길 수 밖에 없던 옛 아낙들의 욕정이 해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괴롭건 웃기건 어떤 상황이던 그 후렴은 역시나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이다.

이는 극한의 슬픔 속 장례에서 극한의 희열 속 축제를 대비시킴으로써 슬픔의 깊이를 오히려 솟구치는 희열의 크기에 빗대어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마치 옛 영화 여정[iii]의 젤소미나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아름다운 트럼펫 선율에 실어 연주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밀양 아리랑

강원도 정선의 아라리, 전남 진도의 아리랑 타령에 이어 우리 나라 ‘3대 전통 아리랑으로 꼽히는 경남의 밀양 아리랑은 어떤 사내의 왜곡된 사랑 때문에 죽은 아랑(阿郞)’의 넋을 위로하고 그녀의 정절을 추모한다는 아랑전설을 모티브로 약 100여 년 전에 누군가 작사하여 곡을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밀양 아리랑은 유랑 재주꾼 사당패들이 부르던 경기잡가 양산도(陽山道)’와 비슷한 선율로서 다소 비토속적인 가락인데, 이는 나운규의 아리랑과 같은 시기인 1920년대 후반 서도창 및 경기창 소리꾼들이 음반으로 만들 때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경쾌한 리듬을 갖고 있는 밀양 아리랑의 곡조와 후렴을 차용하여 광복군 아리랑으로 개사하여 군가로 부르기도 했다. 노랫말은 두 가지 유형으로써, 그 하나는 남녀간의 사랑, 고부간의 갈등이나 일상 생활을 반말투로 노래하는 토속적인 사설과 다른 하나는 아랑이나 밀양 지역 명승인물을 노래하는 사설로서 대별된다. 그럼 먼저 밀양 아리랑의 몇 수를 한 번 살펴보자.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먼저 나온 수에서는 영남 지방 고유 사투리와 반말투로 구수한 된장 맛이 나고, 나중 수에서는 사모하는 사내아이에게 말은 못하고 저만치 서서 자신을 한 번 봐 주길 바라는 사춘기 계집아이 절절한 심정이 와 닿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후렴구,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는 진도 아리랑 타령의 스리 스리랑쓰리 쓰리랑이라고 좀 더 센 소리라는 것을 제외하면 아리랑 타령아라리두 후렴구를 섞어 놓은 듯하므로 먼저 두 아리랑의 것들을 참고하도록 하고 의미만 어찌 되는가를 살펴보자.

우리, 우리 함께, 술에 술과 함께 우리 신이 났네
리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갑시다

또는

우리, 우리 함께, 술에 술과 함께 우리 신이 났네
밝음이 함께하는 국면으로 나아 나갑시다

지난 20125월부터 4개월간 영남루에서 밀양민속예술보존협회가 공연하였던 밀양 아리랑에서

아리, 당닥궁 스리, 당닥궁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라고 기존과는 다소 다른 후렴구가 선을 보였는데, ‘당다궁이란 북 소리가 추가되어 후렴구가 더 풍부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시험 삼아 의역해 보았다.

우리, 당다궁 술이, 당다궁 우리 신이 났네.
우리 모두,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기존 풍물놀이의 쇠가락 중 하나인 덩더궁이아리랑이 결합되어 더 세련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리랑이 생물처럼 진화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

본조 경기 아리랑, 무성영화 아리랑 주제곡(OST)

20세기 초를 넘어 메스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가요 시대로 접어 들면서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아리랑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대표작 중 하나로 1926 10 1일에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1902~1937) 감독의 무성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나운규는 25세의 청년으로 고향인 회령에서 소학교 시절 청진-회령간 철도 부설 노동자들이 부르던 아리랑을 기억하여 아리랑영화의 주제곡으로 탄생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폐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하던 그 해 1937, 월간지 삼천리(三千里)’ 1월호에 게재되었다. 이에 따르면,

나운규는 자신이 기억해 낸 가락을 당시 단성사 악대 바이올린 주자이며 변사로도 유명했던 서정 김영환에게 곡을 다듬도록 의뢰하였고 아울러 가사도 전래 대표 가사를 포함하여 영화 아리랑주제에 맞도록 창작한 가사를 덧붙여 내놓았다.”

고 되어 있다.

이어서 나운규는 이 아리랑의 가락과 가사의 기억을 더듬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아리랑을 영화 주제가로 마음을 정하고 서울에 올라와 당시 화류계, 즉 연예계를 대표하던 기생들을 비롯하여 명창들에게 수소문하며 찾아 봤지만 강원도 아리랑만이 간혹 들릴 뿐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고 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아리랑주제곡의 모티브가 되었던 본조 경기 아리랑은 1894(갑오개혁)에서 1914(나운규 소학교 시절) 사이에 창작되었고, 이후 철도 노동자들을 통하여 불려지다가 나운규에게 들려지게 되었고 몇 년이 흐른 뒤 나운규는 예전에 들은 것을 기억해내어 이것을 다시 김영환이 다듬도록 하여서, 결국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라는 노랫말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아리랑의 아름다운 가락에 배치되는 원망조의 노랫말 때문에 다소 불편하게 들리도 하는데 그 단초는 아마도 발병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 가사가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쓰여진 것이기에 그 과정을 다시 거꾸로 거슬러 따라가 과연 제대로 재현된 것이었는가를 나름 검증해 봄직도 하다.

먼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는 당시 다른 여러 아리랑에서도 불렸던 후렴구이므로 이에 대한 재현은 거의 틀림이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는 주관적인 '기억'으로 재현되었기에 다시 주관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현대어 다리을 우리 옛말로는 아리라 하였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우리아리’, ‘다리아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발병난다를 옛스럽게 표현해 보면 아리 앓이한다로 역추적할 수 있다. 여기서 아리다리의 뜻이 아닌 우리라는 뜻이었는데 이를 오역한 것이라고 상정한다면 아리 앓이한다우리 앓이한다로 고쳐 잡아 우리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첫 줄 나를 버리고우리 앓이한다간에 수의 불일치라는 모순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나를이 원래 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지게 된다. 이는 첫째 우리’, 두째 은 옛말의 목적격 조사로서 우리를이란 뜻의 이 되며, 이것은 아랄이라 발음되어 나랄또는 나를이라고 들을 수 있는 개연성 또한 충분하다. 그렇다면 원래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아리 앓이한다

가 아니었을까? 또한 ()’과도 동음이어서 우리 시조들의 난생설화(卵生說話)’와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어 버리고 가시는 님은이란 가사는 우리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뜻에 더하여 우리 민족, 또는 조국을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뜻도 함께 담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 강산(조국)이여
우리 함께 역경을 헤쳐간다.

우릴 버리고 가시는 님은
얼마 못 되어 우릴 그리워한다

라는 뜻이 되며, 먼저 번 가사 발병때문에 일었던 부정적인 느낌을 모두 지워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뜻을 같이 하던 분이 이미 예전에 계셨으니, 그는 바로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라는 조두남(1912~1984) 선구자의 가사를 쓴 윤해영(1909~1956)님이시다. 그가 이 아리랑의 첫수에 이어서 작사한 2, 3절 가사를 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꿈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 섣달에도 꽃만 핀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사들인지,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벅차 오른다.

우리, 그리고 아리랑

윤해영(1909~1956)님은 어떤 사람인가 찾아 보았다.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혀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작사자 이원수(1912~1981)님친일파란 낙인이 찍혀 있어 경악했는데, 이를 본 순간 실소가 그치질 않았다.

도대체 친일이 무엇이기에 저리도 아름다운 시()들을 우리에게 헌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잠시 그들은 우릴 버리고 가시는 님이었겠지만, ‘십 리도 못 가서 우리 앓이때문에 돌아왔으리라. 아니, '우리 앓이' 때문에 우릴 떠났던 잠간에도 많이 괴로웠으리라.

김씨 일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체제 하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 모두에게 빨갱이딱지를 붙여 내모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이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미 조선은 사라지고 내선일치의 기치 아래에서 어린 유소년 시절 동안 일본을 조국이라고 배우고 자랐던 이들에게 친일파딱지를 붙여 내모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이었겠는가?

참으로 주위에는 우리답지 않은 많은 우리가 있지만 우리는 우리답게 행동해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란 어떤 것인가?

우리 말의 우리란 단순히 ()’의 복수가 아닌 것을 우리는 부지불식 간에 참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남편그리고 우리 마누라와 같은 용례에서다. 양주동 박사는,

어떤 지인이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칠 때 ‘My wife’우리 마누라라고 통역했다가 우리가 아내를 공동으로 두는 푸날루아(Punalua)’식 가족체제로 오해 받을 뻔했다.”

는 우스개를 한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이 우리의 우리에는 가족, 씨족이 아니고서는 이해 불가한 뉘앙스(Nuance)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씨를 말할 때, ‘본관(本貫)’, 즉 성씨의 시조가 살던 관향(貫鄕)’이 어디인가를 묻고 답하는 습성, 즉 씨족사회적 습성을 아직도 내면에 고스란히 보존하고 유지하고 있기에 단순히 의 복수인 우리와는 다른 우리의 우리를 전혀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우리에는 가족혹은 씨족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 이해포용’, ‘존중사랑이 내재되어 수 천년 동안 변함없이 내려왔기에 그 어떠한 갈등의 구조라도 오래 가지 못하며 비록 나뉘더라도 우리끼리는 연민의 정이 끊임없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리랑에 허다한 해석이 난무하더라도, 우리는 그냥 아리랑아리랑이라고 아무 거리낌 없이 불렀으며, 더욱이 그 뜻을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정말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현상, 바로 우리의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아리랑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나름 아리랑에 대하여 논설을 펼쳤으나, 이는 무엇이 옳다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며, 지금은 우리아리랑지만 언젠가 지구촌 우리아리랑이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아리랑이 품을 수 있는 자유에는 한계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을 끝으로 이 졸필의 마침표를 찍는다.



[i] 개성 역사 유적 지구(Historic Monuments and Sites in Kaesong): 2013년 북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지구 내 만수산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신혜황후 류씨를 합장한 왕건왕릉등 여러 왕릉이 안치되어 있다.

[ii] 신청: 무당이나 기예인의 가무기예 전수 장소로서 전국적으로 몇 곳 안되었지만 전남 진도군 진도면 성내리에도 있었다.

[iii] La Strada, 1954년 흑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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